밀레니엄 1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나의 점수 :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엄마가 읽을 때는 흔한 통속소설이라고 생각했다가 스웨덴에서 영화화되고 데이빗 핀쳐(David Fincher) 감독이 리메이크 했다는 소식에 읽게 된 책. 확실히 재미있다. 한 번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읽게 되는 책. 굳이 비교하자면 《해리포터》시리즈 급이다. 다만, 소설이 그 몰입도만큼의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는 여러 사회문제를 충격적으로 다루고 싶었던 것 같지만, 작가의 의도만큼 사회비판이 설득력 있게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소설은 크게 두 사건을 다룬다. 어두운 과거사로 점철된 반예르 그룹의 연례행사 중에 실종된 하리에트 반예르의 살인자를 찾는 것과 유령회사를 세워 규모를 부풀리고 반윤리적이며 불법적인 사업으로 돈을 버는 거대 기업 베네르스트룀 그룹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이다. 베네르스트룀의 덪에 걸려 거짓 정보를 기사로 쓰게 된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소송에서 패하고 자신이 편집 주간으로 있던 사회 비판적 잡지 밀레니엄을 사퇴한다. 반예르 그룹의 전 회장 헨리크 반예르는 미카엘을 고용하여 1966년 있었던 하이에트 반예르의 살인자를 조사하게 하고, 미카엘은 뛰어난 정보조사원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함께 반예르 가문의 추악한 과거를 조사하게 된다.
짧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엄청나게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추리소설이라는 특성상 읽기 시작하면 그만두기 어렵기도 하지만 작가가 워낙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한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자극적인 사건이 빠르게 이어지면서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과는 다른 느낌의 추리소설이다.
장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통계를 보니 작가는 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스웨덴 여성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천재 해커이긴 하지만 사회성이 낮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삶으로 들어오는 것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리스베트는 자신의 후견인한테 성폭행당하며, 실종된 하이에트 반예르의 오빠 마르틴 반예르와 부친인 고트프리트 반예르는 은밀히 여성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정신병자였다. 하지만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중심적으로 파헤친, 마르틴과 고트프리트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은 스웨덴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현실을 나타내기보다는 그냥 정신병자들의 잔혹한 범행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마르틴과 고트프리트가 여성들을 납치해서 살해하긴 하지만 그들은 정상인이 아니며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스웨덴 여성들의 어느 정도가 폭력에 노출되고 그 중 신고를 하지 않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려는 예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리스베트의 상황이 작가의 의도에 더 잘 맞는 것 같았다.
반예르 가문 사람들의 추악한 과거도 사회적 고발이라는 면에서는 잘 다가오지 않는다. 하리에트의 작은할아버지나 5촌 아저씨 등 반예르 가문의 많은 사람이 나치에 가담하고 인종차별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정신병적이고 위험한 생각을 한다는 것 외에는 중심적인 사건과 잘 연결되지 않으며, 인종차별의 구체적인 내용도 드러나지 않는다. 인종차별의 소재는 반예르 가문 사람들의 생각이 건전하지 못하고 서로 대립한다는 장치를 만들기 위해 쓰인 것 같은데, 단지 그것뿐이라기에는 인종차별을 다룬 내용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인종차별적인 생각의 문제점을 보여주려면 더 구체적인 내용을 서술하거나 사건에 기여하는 정도가 더 컸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에 관한 더욱 구체적인 사건을 만들거나, 아니면 인종차별에 관한 내용을 줄이고 베네르스트룀 그룹의 불법적인 사업을 보여주는 것이 더 사회 비판적 효과가 크지 않았을까? 작가는 대기업이 자산을 부풀리거나 국제적 범죄조직의 불법적인 사업의 자금을 대는 반윤리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비판하려 하는 것 같지만, 이에 관한 내용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카엘의 복수라는 측면,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싸움을 리스베트의 조사로 단번에 판도를 바꿔버린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깊은 인상을 받기는 했지만 베네르스트룀 그룹의 윤리적인 문제점을 더 드러낸다면 작가의 의도가 훨씬 더 잘 드러날 것 같았다. 3부작 중 첫 번째만 읽은 것이라 앞으로의 내용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작가의 설정을 파악하지 못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지만, 첫 번째 이야기만 볼 때는 작가가 너무 많은 부분을 비판하려 해서 오히려 산만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에서 나오는, 베네르스트룀 그룹의 비리를 파헤치는 책을 쓰고 미카엘과 방송국 여기자의 인터뷰도 좀 이상했다. 미카엘은 베네르스트룀의 비리가 고발되어 스웨덴 주식시장이 무너지는 상황에 대해서 스웨덴의 재화와 용역은 변하지 않았으며 증시의 악화는 스웨덴 경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지금 상황은 하이에나 같은 투기꾼들이 포트폴리오를 스웨덴 기업에서 독일 기업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말 증시는 아무런 상관없는 허구일 뿐인가? 증시는 회사의 가치를 평가하고 그것을 통해 투자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회사는 증시를 통해 자금을 얻어 재화와 용역을 생산한다. 기업의 정확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중요하며, 이를 통해서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이를 통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증시가 무너지는 것이 스웨덴 경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 베네르스트룀은 유령회사를 세우고 회사의 규모를 부풀려 거짓 정보를 제공해서 투자를 유치했다. 이러한 점에서 베네르스트룀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경제 기자들이 베네르스트룀을 조사하여 주식시장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투자자들이 스웨덴 기업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베네르스트룀 문제는 스웨덴 기업이 규모를 부풀려 거짓 정보를 보여주었고 스웨덴의 경제 기자들이 기업이 올바른 활동을 하는지 감시를 소홀히 했으며 스웨덴 기업의 건전성이 부정확하게 평가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의 사회 비판이나 내용이야 어쨌든, 책은 무척 재미있었다. 낙원 같은 복지국가의 환상과는 다른 스웨덴의 어두운 면도 놀라운 부분이었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이후로 간만에 '이야기를 읽는 것' 자체만으로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쓴 소설이라 하는데 이 정도로 재밌다는 게 무척 놀랍다. 굉장히 흥미진진해서인지 작가가 계획대로 시리즈를 끝내지 못하고 요절했다는 점이 참으로 아쉽다. 책 읽기가 지루하다거나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저하지 않고 권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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