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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Bagdad Café, 1987)] 영화

바그다드 카페
마리안느 자게브래히트,C.C.H. 파운더,마리안느 제게브레히트 / 퍼시 애들론
나의 점수 : ★★★★★








여운이 길게 남는 잔잔하고 따뜻한 영화. 요새 액션 영화를 자주 봐서 그런지 오랜만에 보는 잔잔한 드라마가 반가웠다. 이 영화도 추천을 여러 번 받았는데 왜 이제야 봤는지 모르겠다. 생소한 배우들과 황량한 배경 때문에 억지로 감동을 꾸민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소박한 동네 악단이 거창한 오케스트라보다 마음을 울린다는 《에스메이의 일기》의 말이 딱 맞았다. 보지 않았다면 정말 아까울 영화. 

영화는 황량한 사막에서 독일인 자스민이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과 싸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편이 자동차를 타고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자스민은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바그다드 카페에 도착한다. 카페의 주인 브렌다는 억세고 강한 흑인 여성. 남편이 싸운 뒤에 자동차를 타고 떠나버려서 브렌다는 두 아이와 손자까지 데리고 바그다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말괄량이 딸은 항상 청년들과 놀러다니고 어린 나이에 아기가 있는 아들은 매일 피아노면 쳐서 브렌다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상태. 브렌다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 창고 같은 카페를 싹 정리하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아이들과 친근해진 자스민에게 브렌다는 적의를 표출하지만 어느새 둘은 친구가 된다. 자스민의 마술이 인기를 끌어서 바그다드 카페가 엄청나게 유명해졌을 때 자스민의 비자가 끝나고 자스민은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 브렌다와 주변 사람들이 자스민을 한참 그리워하는 도중 자스민은 다시 돌아오고, 결국 브렌다는 돌아온 남편과 만나며 자스민은 자신에게 빠져버린 화가와 결혼한다.

평소에 우리나라 사람에 비해 서양 사람들은 맺고 끊는 게 확실하고 정이 없다고 들어서 사랑이라면 몰라도 정을 소재로 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억세고 적대적인 브렌다가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사무실을 싹 치워놓아서 화를 내고 슬그머니 마음에 들어하는 장면이 유머러스했다. 자스민의 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내보내고 네 아이나 돌보라고 소리치는 브렌다에게 자스민이 난 아이가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장면과 브렌다가 거칠게 닫았던 방문을 살짝 열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미안한 듯 말하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특히 잘 어울리지 않는, 정 반대의 사람이 서로 마음을 여는 장면이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유머러스한 자스민의 성격도 억세고 강인한 브렌다의 성격과 대비된다. 거대한 체구에 금발이고 눈동자가 밝은 전형적인 서양 사람인 자스민과 날렵하고 곱슬머리에 검은 눈동자의 전형적인 흑인인 브렌다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 서로 친구가 되는 장면은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편협하게 싸우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반대인 둘도 남편이 떠나가버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라스베가스 근처의, 주위에 있는 것이라곤 차와 도로뿐인 바그다드 카페의 황량한 모습이 둘의 상황과 닮았다. 남편이 떠나버린 힘든 상황에서 여자들끼리 남자의 빈자리를 극복하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영화라는 평가도 있었는데, 확대해석이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외롭고 거친 환경에서 친구가 되었다는 점 때문인지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가 생각났다. [바그다드 카페]는 동성애 코드를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주인공 사이의 감정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자스민을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벤자민의 모습은 [브로크백 마운틴] 마지막 장면의 히스 레저(Heath Ledger)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벤자민은 히스 레저처럼 슬퍼하는 모습이 아니라 억센 모습으로 그리움을 감추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왠지 닮아 보였다. 

주인공들처럼 외롭고 황량한 바그다드 카페도 자스민의 마술로 활기를 띤다. 자스민과 브렌다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 카페가 점점 번창하는 것을 보아 바그다드 카페가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재는 아닐지. 자스민의 트렁크에 있던 마술 세트가 엄청나게 좋은 것이었는지 자스민의 마술은 정말 신기하다. 조용한 자스민이 마술을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카페를 활기차게 하는 모습에서는 [그린 마일(The Green Mile, 1999)]의 초능력자 죄수 존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선의에 찬 존의 초능력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자스민의 마술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치있는 마술로 바그다드 카페가 변화하는 모습은 놀랍다. 거의 텅텅 비다시피 한 카페가 트럭 운전사들의 명소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술을 부리는 자스민의 모습은 자유롭고 순수해 보였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낡은 자동차와 영화의 분위기를 보고 영화가 지루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착각이었다. 내용 자체도 감동적이고 인상 깊었지만 화면과 음악도 아름다웠다. 자동차 문을 여닫음에 따라 음악이 들리고 끊기게 한 재치있는 설정 하며 영화 구석구석에 배치된 참으로 적절한 배경음악들, 브렌델의 아들이 연주하는, 약간 미숙한 바흐의 평균율은 더 이상 잘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영화에 잘 녹아들어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영화음악 'Calling you', 가사와 영화가 이렇게 잘 맞을 수 있을까! 자스민이 돌아온 후 열리는 공연에서 자스민과 브렌디의 노래는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했다. 

영상 또한 훌륭하다. 라스베가스의 사막은 황량하지만 아름답다. 해 지는 사막을 배경으로 자스민과 브렌다의 딸이 여행자와 함께 부메랑을 던지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자스민과 브렌다가 만나는 장면과 사막의 꽃들 사이에 앉아있는 장면 또한 일품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바그다드 카페의 모습은 자체만으로 인상적이었으며, 자스민의 방 창문으로 보이는 나무도 기억에 남는다. 신기루처럼 보이는 사막의 빛과 자스민에게 청혼하는 화가의 설정도 훌륭했다. 자스민을 좋아하지만 수줍어서 말은 못하고 자스민에게 모델이 되기를 청해서 그림을 그려준다는 설정은 자스민의 마술과 더불어 영화의 유머러스한 요소이다. 점차 다른 그림을 그릴 때마다 비슷한 자세로 슬금슬금 노출하는 정도를 높이는 자스민과 화가의 모습은 귀엽고 우습다. 자스민이 화가의 그림을 따라서 사막의 빛을 문신으로 새기는 장면이나 화가가 자스민이 결혼하면 비자 문제가 해결된다면서 말을 돌려가며 수줍게 고백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첫인상과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면 절대로 안 되는 영화.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꼽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영화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 사람들이 추천했던 걸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했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메시지를 이렇게 감동적으로 전하다니! 아직 보지 않았다면 당장 봐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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